정부가 철강산업의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 4000억원 규모의 보증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철강 수출공급망강화 보증상품 업무 협약식’을 열고 포스코·기업은행·무역보험공사와 함께 총 4000억원 규모의 상생형 수출금융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이날 협약식에는 이희근 포스코 사장,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 최삼영 동국제강 사장, 김수호 세아베스틸지주 대표, 박성희 KG스틸 사장 등 국내 주요 철강사 대표들이 참석했다. 협약식은 ㅍ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의 후속 조치로 미국 등 주요국의 통상장벽 강화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중견 협력사와 철강 파생상품 생산업체의 금융 부담을 덜기 위해 마련됐다. 포스코와 기업은행이 각각 출연한 200억원을 기반으로 무역보험공사가 총 4000억원 규모의 우대보증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참여 기업은 최대 2%포인트 인하된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으며 보증 한도 확대와 보증기간 연장(1년→3년), 보증료율 인하(1%→0.7%) 등의 혜택을 받는다.

문신학 산업부 1차관은 “지난주 미국과의 감세 협상이 타결됐지만 철강에는 여전히 50%의 고율 관세가 부과되고 있으며, EU의 탄소국경조정제(TRP) 등 주요국 수출 장벽도 강화되고 있다”며 “철강산업은 단순한 산업 경쟁력을 넘어 포항·광양·당진 등 지역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산업으로, 균형성장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도 업계의 어려움을 무겁게 인식하고 있다”며 “이번 ‘철강 수출공급망 강화 보증상품’은 그 부담을 덜기 위해 마련된 중요한 지원책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문 차관은 “주요 철강사와 금융기관이 협력해 중소·중견업체의 수출 활동을 지원하는 상생의 결실로 이러한 노력이 산업 생태계 전반의 회복력 강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열린 철강업계 CEO 간담회에서는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의 세부 추진 방향을 공유하고 업계 의견을 청취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공급과잉 품목의 설비조정 지원 ▲수입재 대응 등 통상 대응 강화 ▲고부가·저탄소 전환 촉진 등을 추진해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과의 경쟁 심화와 공급 과잉 문제, 그리고 향후 대응 방안 등 세 가지 현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졌다”며 “판재업체는 저탄소 전환과 설비 투자 지원을 철근업체는 고철 등급제 도입을, 압연업체는 미국 시장 접근성 확대 방안을 각각 건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설비 통폐합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실제 추진 과정에는 법적·재무적 제약 등 여러 가지 허들이 존재한다”며 “특히 업종 간 협의가 불가피한 만큼 공정거래법상 기업 간 협의가 어떻게 해석될지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공급 과잉 문제는 결국 제품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은 범용 제품에서 비롯된다”며 “기술력 차별화를 통해 시장 내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단순한 가성비 경쟁을 넘어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철강산업은 오랫동안 높은 생산성을 기반으로 한 ‘가성비 전략’으로 경쟁해왔지만 최근 중국이 같은 전략으로 시장을 잠식하면서 단순한 가격 경쟁으로는 우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저탄소화, 제품 고도화, 서비스 혁신, 해외 투자 확대 등 다양한 전략을 동시에 추진해야만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며 “가성비 중심의 경쟁 구조를 넘어 차별화된 시장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 2030년까지 특수강·특수탄소강 R&D 2000억 투입
정부는 이날 오전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에는 구조적 공급과잉 품목에 대한 선제적 설비조정, 통상 대응 강화, 저탄소·고부가 전환 등 철강산업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핵심 정책 과제가 담겼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30년까지 특수강과 특수탄소강 분야에 약 2000억원 규모의 연구개발(R&D) 투자를 추진한다. 고온·고내식 합금, 초내열 합금 등 첨단 소재 기술을 확보해 고부가 철강 제품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특히 고망간강, 니켈강, 크롬강, 클래드강, 스테인리스강 등 5개 특수탄소강 품목을 글로벌 1위 수준으로 육성하고 시장 점유율을 20% 이상 확대할 방침이다. 이번 투자에는 항공기 터빈 블레이드, 에너지 설비 등 극한 환경에서 활용되는 '슈퍼알로이' 기술 개발도 포함돼 있다.

김수호 세아베스틸지주 대표는 “슈퍼알로이는 극한의 온도에서도 성능을 유지해야 하는 합금으로, 항공기 터빈 블레이드나 기체 부품 등에 사용되는 등 특수강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라며 “이러한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지금 산업 현장에도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니켈, 티타늄, 크롬 계열 합금 등은 국내 연구 인력과 경험이 많지 않아 해외 기술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라며 “정부가 금속소재와 제조공정 분야의 연구개발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준다면 산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